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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아름다운 고집
관리자 님께서 남기신 글입니다.

[문화칼럼] 아름다운 고집
며칠 전 아내와 함께 찾은 냉면집에서의 일이다. 주문하고 벽면을 보았더니 이런 쪽지가 붙어 있었다. ‘꽃 피는 내년 4월 1일에 다시 뵙겠습니다. 한 해 동안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집은 늘 추석 바로 전날에 문 닫고 다음해 4월에 다시 문을 연다고 한다. 한마디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무리 계절 음식이라 쳐도 시내 한복판에 집세가 얼마나 비싼데 근 반년 동안이나 가게를 비운단 말인가. 꼭 그럴라치면 다른 메뉴로도 얼마든지 영업할 수도 있을 터이다. 자주 가는 도심의 한 추어탕집도 신선한 배추를 구할 수 없는 12월에서 2월까지는 가게 문을 열지 않는다. 실로 자본주의를 역행하는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 영업 방침은 하루아침에 생긴 게 아니라 수십 년 동안 이어진 전통이라고 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고집인가.

영업을 하더라도 이익만 추구하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고집스레 가게를 꾸려가는 태도. 여기에서 나는 경상도 사람의 기질을 발견한다. 외지인들은 여기 사람들은 무뚝뚝하여 웃는 낯빛을 보기 어렵다고 타박한다. 하지만 경상도 사람들은 외려 웃음기 많은 부드러운 얼굴을 기생오라비 같다며 마땅찮게 여긴다. 소설가 이윤기 선생의 말이다. 자기 누님이 하루는 종일토록 씨름하다 놓아둔 못을 퇴근해 온 남편이 단박에 박아주는 걸 보고 시큰둥하게 먼 산 바라보며 ‘세상에 서방 없는 년들은 다 어찌 사누’ 하더라는 것이다. 경상도 여자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찬사인 셈이다. 에둘러 말하기, 혹은 어눌하게 말하기가 경상도 사람들의 화법이다. 안동에 사는 안상학 시인은 ‘아배 생각’이란 시에서 경상도 특유의 화법으로 먼 곳에 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뻔질나게 돌아다니며/ 외박을 밥 먹듯 하던 젊은 날/ 어쩌다 집에 가면/ 씻어도 씻어도 가시지 않는 아배 발고랑내 나는 밥상머리에 앉아/ 저녁을 먹는 중에도 아배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니, 오늘 외박하냐?/ -아뇨, 오늘은 집에서 잘 건데요./ -그케, 니가 집에서 자는 게 외박 아이라?// 집을 자주 비우던 내가/ 어느 노을 좋은 저녁에 또 집을 나서자/ 퇴근길에 마주친 아배는/ 자전거를 한 발로 받쳐 선 채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야야, 어디 가노?/ -예……. 바람 좀 쐬려고요./ -왜, 집에는 바람이 안 불다?// 그런 아배도 오래 전에 집을 나서 저기 가신 뒤로는 감감 무소식이다.’

정은 속정이라야 한다고 여기는 이들이 경상도 사람들이다. 아무리 정이 깊어도 세 치 혓바닥 위에 얹는 순간 가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그래서 부러 무뚝뚝하게 대하거나 마음 따로 말 따로 식으로 말해 부아를 돋우기 일쑤다. 사물에 이름을 부여할 때도 이런 성정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대덕산이라는 점잖은 말 대신 전국 어디에도 다 있는 앞산을 가져다 이름 붙이거나, 대구천이라는 고유명사 대신 새로 낸 시내란 뜻으로 신천이라고 부른다. 선짓국이라는 좋은 말 놔두고 굳이 소피국이라고 부르거나, 밥 따로 국 따로 나온다고 해서 따로국밥이라 명명하고, 한우 육회를 뭉티기라고 불러야 직성 풀리는 이들이 경상도 사람들이다. 느끼한 맛을 싫어하고 얼큰하고 화끈한 맛을 선호하는 식성도 여기에서 그리 멀지 않을 듯싶다.

이러한 성정이 어디에서 기인된 것일까. 나는 ‘강의목눌’이라는 고색창연한 말에서 그 근거를 찾아본다. 논어 자로편에 공자는 인에 가까운 것이 강의목눌이라고 했다. 강(剛)은 의지가 강해 물욕에 휘둘리지 않는 일을 뜻하며, 의(毅)는 기가 강하고 과단성이 있는 모습이고, 목(木)은 나무 그대로 질박한 것, 눌(訥)은 말수가 적음을 말한다. 강의목눌의 반대말이 교언영색이다. 남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말과 안색을 교묘하게 꾸미는 사람을 일컫는다. 약삭빠르게 자기 잇속을 챙기고 자기 자랑이 몸에 밴 사람들이 먼저 출세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이런 세태에도 불구하고 자기 방식대로 한눈팔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다소 거칠지만 솔직한 사람들, 그 아름다운 고집을 자주 접하고 싶다.

장옥관(시인·계명대 교수. 총동창회 상임이사, 국문'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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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작성일 : 2011년 09월 16일


date : 2011-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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