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ytime, anywhere, we are a family!

커뮤니티

동문동정

실과 바늘로 그리는 화가 서옥순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1 댓글 0건 조회 4,486회 작성일 21-02-19 09:51

본문

5c7cc209c1bf05889dc57e38eca86752_1613695275_8114.jpg

(서옥순 자화상 2018)

한 땀 한 땀 기억한 어머니의 삶과 눈물
색동 복주머니 만들어 주던 할머니
사랑으로 감싸 안았던 따뜻한 추억
긴장·이완의 순간 반복하는 '인생'
맺음과 풀림이 반복되는 '바느질'
자식들 밥 한그릇 더 챙기기 위해
성실과 신념으로 살아온 헌신의 삶
문득 흘러내린 실이 눈물로 완성
그 작품 앞에서 한없이 흐르는 눈물


가창댐을 안고 숲길을 삼십분 정도 달리면 고갯마루 아래에 할머니 댁이 있다. 부엌과 나란히 있는 작은 뒤뜰에는 우물이 있었다.

낮은 담장을 뒤로하고 가지런한 장독대가 있는 그 공간은 할머니의 많은 시간이 머물던 곳이었다.

여름철에는 밭에서 따온 오이·고추·참외들로 우물가가 풍성했다. 가끔은 맑은 물이 담긴 그릇이 장독대 위에 올려져 있기도 했다.

낮에는 소란스러움으로 가득했던 우물가는 밤이 되면 키 큰 대나무가 병풍처럼 둘러처진 할머니의 기도 공간으로 바뀌었다.

우물 속을 내려다보는 것은 호기심과 두려움이 교차되는 일이었다. 까치발로 디뎌야 겨우 볼 수 있었던 우물 바닥은 아득한 깊이 때문에 현기증마저 일게 했다.

잠시 내려다보는 순간, 코 끝을 스치는 우물 속 공기는 푸릇한 이끼 내음과 함께 달고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고 또 다른 비밀의 세계를 본 것 같았다.

우물가의 또 다른 풍경은 사람들이 밭일을 끝내고 돌아와 등목을 하는 즐거움이었다. 두레박으로 퍼 올린 물을 조금씩 흘려 내리면

모든 세포를 깨우는 듯 번쩍 정신이 드는 아찔함이 있었다. 매미 소리가 가득하고, 쨍한 한낮의 더위도 그렇게 잠시 가라앉았다.

코 끝 시린 겨울에는 창호문 저편에서 새벽부터 마당을 쓰는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누워 비질 소리를 듣다가 대청마루에 서서

비질 된 마당을 바라보면 그 결들이 참 곱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실과 바늘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 서옥순 작가의 작품들은 이렇게 옛 기억들을 소환해 주었다. 그녀가 바늘을 들고 작품을 시작한 계기가

'할머니가 색동천으로 복주머니를 만들어 주었던 기억' 때문이라고 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는 계명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996년 독일로 유학길에 올랐다. 그때 작품의 소재들은 고무신, 색동저고리, 기하학적인 선들로 교차되면서 이어지는 바느질이었다.

그것은 서양에서 동양이라는 근원에 대한 고민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을 통해 선택된 물상들이다.

지금까지 그 물음은 계속되었고 작가의 작품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존재에 대한 '사유'다. 그 존재는 작가의 현존이면서 혹은 할머니 어머니의 삶을 아우른다.

그녀는 '바느질로 생각'하는 작가다. 바느질은 서두를 수 없다. 오직 성실과 신념으로만 가능한 행위다. 그래서 끊임없는 성찰의 온기를 품고 있다.

작품의 도구로 바늘을 선택하는 것이 서양화와 현대미술을 전공한 작가에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자기 안의 더 큰 자아를 발견한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다. 그 지점에서 자신을 끌어안고 밀어 올리는 당당한 생의 에너지를 얻게 된다.

작가는 더 큰 자아를 자신을 사랑으로 감싸 안았던 할머니와 어머니의 모습에서 발견하게 된다. (자세한내용은 첨
(영남일보2021. 2. 18)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